최근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그렇고 오랬동안 함께 했던 피키 블라인더스에서도 그렇고 참 매력적인 배우 킬리언 머피가 떠오릅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부드러움과 연약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눈이 모든 걸 말해주는 배우인듯 합니다.
캐릭터가 전부다.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 캐릭터를 살려내는 배우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보면서 로버트 맥키의 캐릭터라는 책을 읽어봅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데 뭐 제가 시나리오에 덤벼볼 일은 없지만 영화감상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빌려보았습니다.
늘 최근에 읽은 책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평범한 1인으로서, 캐릭터는 역시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먼저 떠오르기는 하더군요. 그 외에도 읽었거나 보았던 대부분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스토리는 잊게 되어도 캐릭터는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면 게임 끝나는 거죠.
삶과 인간의 은유
스토리가 존재(being)의 본질을 표현하는 삶의 은유라면,
캐릭터는 생성(becoming)의 본질을 표현하는 인간성의 은유다.
삶과 인간성, being과 becoming의 절묘한 대비로 스토리와 캐릭터의 관계와 본질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명제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실 하나하나 작은 개념들을 따져봐야 할 것인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스토리란 무엇인가, 캐릭터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생성이란 무엇인가, 본질이란 무엇인가, 삶은 또 무엇이며 인간성은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는가 생각해봐야 하고, 이런 식이라면 책읽기가 가능하기나 한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 들면, 책읽기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질문을 끝없이 떠올리는 이유를 몰라 멍해지는 것입니다. 잠시 들뢰즈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사유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리면서, 뭔가 깊은 사유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뭔가 의미있는 창조 활동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존재의 본질은 모르겠으나 스토리가 삶을 이야기하고, 캐릭터가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평범하지만 문학이든, 영화든 그래도 좀 도움이 될만한 기본인듯 합니다.
작품 속의 서사가 인간사와 삶에 대하여 그 존재의 본질적인 면을 비춰주고 있다면 존재들의 세계, 혹은 세계내의 존재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좀 더 확장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캐릭터의 다채롭고 입체적인 모습들, 그 생성과 변화를 관찰하며 감응할 수 있다면 분명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오펜하이머와 나폴레옹의 캐릭터
지금 생각나는 영화 오펜하이머와 오늘 본 나폴레옹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어떠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복잡하지 않게, 심플하게 생각해보면 오펜하이머와 나폴레옹 모두 내면에 무거운 짐을 진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고뇌를 어떻게 쉽게 정리할 수있겠습니까만은 스토리상의 느낌은 약간씩 다릅니다. 오펜하이머의 스토리는 개인사보다는 그 시대의 중대한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주인공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나폴레옹은 역사적인 사실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개인사와 관련된 고민과 갈등을 좀 더 많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킬리언 머피의 완벽히 몰입된 연기에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고민과 갈등이 격렬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차갑고 이성적이면서도 일체감있고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역시 뛰어난 연기파 배우인 호아킨 피닉스가 맡아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만, 알 수 없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감독이 해석하는 나폴레옹과 관객이 기대하는 나폴레옹의 차이가 숨어져 있기 때문이겠죠.
다시 주제로 돌아가보면 이 두 영화의 스토리에서 존재의 본질을 찾아볼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약간 억지로 쥐어짜야만 하는 느낌입니다. 두 영화 모두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속에 영향을 끼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자신의 책임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스토리의 향방이 결정지어지는 존재들입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자유의지가 있는지에 관련없이 존재하는 것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한계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죠. 캐릭터를 보면서 좀 더 와닿았던 것은, 자신의 현재, 혹은 세계의 현재에서의 그 어떤 선택은 새로운 미래를 생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생성의 본질은 개개인의 선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좋고 나쁨, 선과 악, 희극과 비극의 어떤 경계로 나눌지라도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새로운 미래의 기초인 것이죠. 킬리언 머피와 호아킨 피닉스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이었네요. 두 작품의 영화로서의 평가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비전문가로서 그래도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에 시간나는대로 기록을 남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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