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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기

사랑의 단상 1 - 롤랑 바르트

by 무하뉘 2023. 12. 17.

 

 

 

이제 시작

 

시작이 정말 쉽지 않은 읽기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새로운 사랑에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사랑에 빠진다해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 보이는 글입니다.

사랑이란 것이 그런가 봅니다.

사랑의 단상을 천천히 읽어보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찾아보려합니다.

 

 

책의 구성

책의 구성은

figure - arguement - fragment 와 인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봅니다.

 

figure를 설명할 때 일종의 제스쳐, 안무와 같은 것으로 표현해주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arguement는 정의가 아니라 논지라는 말도 이해는 됩니다.

fragment라고 하는 소설적인 텍스트로서, 파편으로서의 사랑의 단면과 사유의 전달이라는 구성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뭘 이렇게 어렵게 쓴 것인지, 적응하기 참 힘드네요~

 

 

무엇을 읽을 것인가?

첫번째 글 "나는 빠져들어간다, 나는 쓰러진다...."를 읽으며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나야말로 수렁에 빠졌어~라고 하셨을 것 같네요~ 적어도 저는 그랬었구요.

김진영 선생님 "롤랑 바르트의 글은 벤야민과도 비슷하게 쓰여져 있지 않은 것을 읽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멀쩡히 써져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구만....ㅠㅠ

또한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말씀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하자면 읽고 이해하는 독서가 아니라, 탐색하고 추론하고 상상하고 또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어야 하는 독서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ㅎㅎ

 

여하튼 첫번째 수렁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궁금해하며 생각하게 되는 것들...

1. 사랑 또는 욕망의 구조를 탐색하는 글들인걸까?

2. 프로이트와 라캉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쓴 것은 아닐까?

3. 나는 삶 속에서 이러한  문형을 읽어내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질문과 상관없이 그의 글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상태는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향하는 상태의 경험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단순무식하게 표현하자면 라깡의 상징계는 질서의 세계, 언어의 세계, 의식의 세계, 규범의 세계이고, 실재계는 혼돈, 언어이전, 무의식, 쾌락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언어 이전의 유아기에 어머니로부터 무한한 쾌락을 느끼던 그 시기를 실재계라고 한다는데, 거울단계의 상상계를 거쳐 부모로부터 언어를 배우고 금기를 배우고 규범을 배워가며 상징계로 넘어간다고 합니다.(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란속에 빠져들어가며며 다시 그 실재계의 쾌락을 향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프로이드의 쾌락원칙, 죽음충동 또한 극단의 실재계로의 질주라고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에서 수렁, 사라짐,추락, 죽음의 부드러움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기의 거부, 윤리의 거부

여기에 동의하느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구요.

마지막 부분에서 용기의 거부를 따라 윤리의 거부를 수행한다는 표현이 참 힘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니체의 사자와 낙타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과 사회에서의 성공을 향해서라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배우고,

자기 자신의 윤리, 자신의 철학,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배우지만,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을 향한 용기도 필요없고, 

나의 정체성이나 철학, 윤리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만이 나의 전부가 된다는 표현을 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유일한(?) 긍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자도 낙타도 거부하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사랑만이 유일한 이상인 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이것이 실재계의 혼돈과 쾌락을 지향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엉뚱한 비약

잘 모르는 부분이긴 한데 '개념적 은유'라는 개념도 연관되어 떠올려보고,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 압축과 전치, 은유와 환유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좀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구요.

사랑이 일종의 연못, 구덩이, 호수나 바다처럼 깊은 공간처럼 연상되게 하는 '빠지다'라는 동사를 쓰게 되는 것은, 우리가 쓰는 언어가 기본적으로 은유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수렁, 추락,사라짐, 최면, 죽음,등의 단어들의 인접성에서 환유적인 요소가 있는 것 아닐까 우겨보며 상상해보면서, (라깡이 환유운동이라고 설명하는 움직이는 욕망의 대상-실재계의 파편과는 상관없이)

사랑이나 욕망의 구조를 가로/세로 혹은 날줄/씨줄의 이미지로 표현해본것 아닐까 하며 4차원의 세계로 비약해봅니다.~~ ㅎㅎ

 

두서없이 정신없이 적어보면서 이런 어줍잖은 가설을 통해 다른 단락을 읽어보려 했습니다만, 두번째 '부재하는 이'를 읽으며, 바로 접기로 했습니다~~ㅋㅋ

바르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한다는 것이라는 김진영 선생님에 말씀에 한 번쯤 시도해 본 것으로 만족하고, 시간도 얼마 없는데 좀 즐기면서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넘겨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치트키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