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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기

자기극복과 평범함을 사랑하는 여정 - 니체와 오규원

by 무하뉘 2023. 12. 21.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머리말 중에서

 

 

 

내일 나는 출근을 할 것이고

 

살 것이고

 

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므로

 

내일 나는 사랑할 것이고,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주소도 알려 주지 않는 우리의 희망에게

 

계속 편지를 쓸 것이다.

 

 

손님이 오면 차를 마실 것이고

 

죄 없는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고

 

밥을 먹을 것이고

 

밥을 먹은 일만큼 배부른 일을

 

궁리할 것이고,

 

맥주값이 없으면 소주를 마실 것이고

 

맥주를 먹으면 자주 화장실에 갈 것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만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게 전화도 몇 통 할 것이고,

 

전화가 불통이면

 

편지 쓰는 일을 사랑할 것이다.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 중에서, 오규원

 

 

베르너 호르바스(Werner Horvath) 그림 Friedrich Nietzsche - the Three Metamorphoses, 40 ×50, 2005

 

 

짜라투스트라를 다시 읽어보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제대로 읽지 못했었음을 바로 알겠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다 보니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만족과 평화와 정신의 행복 추구, 자기 극복 대신 자신과의 적절한 타협 같은 것은 주체적인 삶도 아니고, 의지적 삶도 아니라 합니다. 잠을 잘 자기 위한 지혜를 전해주는 현자의 말을 따라 살면 결국 생각 없는 사람이 되고, 정신은 무기력해진다 합니다. 주체적으로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사랑하라 합니다.

 

오규원 시인은 또 다르게 삶을 사랑합니다. 일상의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은 같아 보입니다. 니체가 어깨 다리 배에 힘 빡 주고 일장연설의 분위기로 전하는 이야기나 오유원 시인의 흔들거리는 거리에서 힘 빠진 걸음걸이로 빈약한 상상력을 탓하며 읊조리는 말이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시선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인 것도 같아 보입니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자신 이상의 것을 창조해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며 사람을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니체는 자기극복, 자기변혁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변화와 도전을 추구해가도록 한다는 측면에서는 오규원 시인의 차분하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자세와 달라보이는 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규원 시인의 시선에는 분명 따뜻함을 느끼게 되면서 동시에 멈추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자세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결코 나태함이 아니고 자기 극복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자세에 부드러운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때로는 뻔히 해야할 것을 알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일지라도 누군가 다그치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괜한 반발심이 생기기도 하기때문이죠. 오히려 나긋나긋한 분위기로 조용조용히 읇조리는 말의 어조에 더 동조하고 단단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니체의 말에, 짜라투스트라의 질문에는.... 뭐 지금까지 특별히 한 건 없지만 지금이라도 사랑하려 한다네~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자기극복을 위한 원대한 탐구와 차분한 일상의 순간 모두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균형잡힌 인생을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도 같습니다. 시를 잘 읽는 법, 시를 잘 쓰는 법 모두 세상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또 내일이 되면 다시 새로운 오늘 하루로, 매일매일 경이로움과 사랑의 시선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