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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와 앤디 워홀 - 유사와 상사

by 무하뉘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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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의 도서관 >

푸코의 유사와 상사

 

오늘은 사둔지 꽤나 오래된 은유의 도서관이라는 책을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미셀 푸코는 두 사물 사이의 닮음을 유사와 상사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A가 B를 닮았다고 할 때는 유사의 관계이고 A와 B가 서로 닮았다고 할 때는 상사의 관계라고 합니다. 유사는 원본이 있고 모방을 하는 재현의 개념이고, 상사는 둘 중 무엇도 다른 것의 원본이 되지 않는 상호적인 관계입니다.

 

 

<이미지의 반역 - 르네 마그리트, 1929>

 

유사 (resemblance) 파이프 그림은 파이프를 닮지만, 파이프가 파이프 그림을 닮는 것은 아니다.

 

 

< 캠벨 수프 캔 - 앤디 워홀,1962 >

상사 (similitude) 어느 것이 다른 것을 일방적으로 닮지는 않는다.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의 원본이 되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는 유사와 상사

 

유사가 위계에 따른, 차이의 망각을 통한, 동일하지 않은 것의 동일성을 평가하게 하는 것이라면 상사는 그저 닮음을 창조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의 개념으로 확장성이 높다고 하는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보니 프루스트는 닮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유사성인듯 보이지만 '상사'적인 성격도 꽤 많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상사'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 풍성하고 다양한 표현이 나오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물론 엄격하게 따진다면 정확하게 옳은 말은 아니겠지만 표현의 성격이 그렇게 보여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비극 배우에게서 작가의 작품이란 탁월한 연기 창조를 위해 그 자체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하나의 질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마치 내가 발베크에서 알게 된 위대한 화가 엘스티르가 별 특징 없는 학교 건물과 그 자체로도 걸작인 대성당에서 동일하게 가치 있는 두 그림의 소재를 발견한 것과도 같다. 또 화가가 거대한 빛의 효과 속에 집과 마차와 인물 들을 녹여 동질적인 실체로 만들어 내듯이, 마찬가지로 라 베르마는 평범한 예술가라면 따로따로 드러나게 했을 단어들을 녹여 똑같이 평평하게 만들거나 들어 올리면서, 그 위에 두려움이나 다정함의 광대한 천을 펼쳐 보였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라 베르마의 연기를 설명하면서 마르셀은 화가의 작품활동과 라 베르마의 연기의 유사성을 찾아 설명하는데요, 스토리의 흐름상으로도 표현의 형식으로서도 라 베르마의 연기를 화가의 작품활동에 빗대어 설명하고는 있으나, 사실상 반대로 설명을 한다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만큼 '상사'적인 표현처럼 생각됩니다. 제가 제대로 본 건지는 사실 잘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만~~ㅎ

 

"이처럼 시인은 운율을 맞추기 위해 곧 내던져질 단어를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음악가는 오페라 대본의 여러 대사들을 어긋나게 하며 끌어가는 리듬 속에 그 대사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므로 라신의 운문과 마찬가지로 현대 극작가의 대사 속에도 라 베르마는 그녀만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고통과 고귀함과 정념의 광대한 이미지를 끌어 들일 줄 알았으며, 또 거기서 우리는 여러 다른 모델을 그린 초상화에서 화가를 알아보듯 그녀를 인식한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시인과 음악가, 연기자와 화가의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이 중 누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오던지 상관없이 약간의 변주만으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프루스트의 훌륭한 점은 이러한 다양한 표현방식과 내용을 일관되게, 끊임없이 창조하고 표현해 내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괴델의 불완전성정리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떠올린 다른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요. 닮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같음과 다름에 대한 이야기인듯 합니다만~김상욱 교수의 유튜브를 보는데 이런 설명을 하더군요.

 

A) 2+3=5

B) 3+2=5

C) A와 B는 같지 않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문과출신인 저에게는 이해불능세계라서 더 파고들기는 힘듭니다만, 무슨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관계된 이야기중에서(?) 나온 얘기인듯 합니다. 수학에서 2+3과 3+2의 차이, 그러니까 순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같지 않을 수 있다는게 참 신기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언어와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대체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2와 3의 순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또 프루스트의 표현방식을 떠올려보면 "2+3은 5인데 5는 또 3+2라고 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곧 4+1이나 혹은 0+5로 말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라는 식의 표현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좋아하기로 선택하고 포장하는 것인지, 문학으로서 풍성함이 넘쳐나서 좋아하게 된것인지 저의 뇌를 믿을 수가 없네요. 푸코의 닮음의 분석이 프루스트의 다채로운 표현방식앞에서 왠지 작아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지는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이론과 분석이 분명 필요하고 작품을 즐기는데 플러스가 되는것이 사실이겠지만 창조 또는 창작의 파워 앞에서는 왠지 본질과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엉성하고 엉뚱한 이야기라도 이것은 인간의 특권이며 창의적인 세계로 내딛는 한 걸음일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해서 오늘의 결론은 유사든 상사든 닮음이든 차이든 같음이든 다름이든, 나는 풍요롭고 다채롭고 모호하지만 내적 지향성이 있는 그런 세계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자기발견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한주간에는 조금쯤 엉뚱하거나 특별했던 상상의 시간 혹시 없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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