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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by 무하뉘 2023. 12. 29.

 

2023년 연말을 맞이하며 이상하게도 쇼펜하우어가 뜨는 분위기입니다. 오늘은 왜 쇼펜하우어를 찾는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너무 무겁지 않고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를 읽어봅니다. 

 

왜 쇼펜하우어 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는 게 힘들어서'라는 심플한 답이 정답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쇼펜하우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염세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자기 인식과 자기 극복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에 현실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는 것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정리해 보기로 합니다.

 

 

의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란 모든 만물을 지금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으로,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 생명의 원리, 생명 에너지, 즉 자연속의 모든 힘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의지는 이유도 없으며 맹목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우리가 아는 세계는 이 삶의 맹목적인 의지가 무생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현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목적이나 이유 없이 무조건적으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욕망과 충동을 일으키는 맹목적인 의지가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의 개념이 무의식 개념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가 있다고 합니다. 니체 또한 프로이트를 '쇼펜하우어의 진정한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맹목적 삶의 의지개념이 정신분석학과 통하는 면도 많다고 합니다. 철학으로부터 심리학이 출발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표상

 

"표상은 의지의 외화, 즉 의지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표상은 의지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의 존재와 작용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 쇼펜하우어

 

표상이라는 말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지각에 따라 나타난 외부 대상의 상'이라는 의로 사용된다고 하는데요 결국 인간이 인식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내 앞의 책상이 실재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책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실재론이고, 내 앞의 이것이 내게 책상으로 드러나기에 책상으로 인식할 뿐이지 실재가 책상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관념론이라고 할 때, 실재론은 객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며, 관념론은 주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주체나 객체가 동시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 인식의 조건상 주관과 객관이 구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은 표상으로서의 세계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인식주관(인식주체)에 포착된 일종의 상이고, 주관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객관인 것이죠. 

 

 

염세주의(Pessimism)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고통과 불만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 책에서는 염세주의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욕망이 있으면 결핍으로 괴로워지고, 욕망이 없으면 삶의 무의미로 권태를 느끼는 것이 삶의 모습인 것이지요. 이러한 삶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설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또한 세계의 근원이 의지이기 때문에 이성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전의 이성중심의 철학과 반하는 의지의 철학을 내놓았으며, 이는 생철학과 실존철학의 원류에 해당하여 니체, 키르케고르, 베르그송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키르케고르, 도스토예스키, 톨스토이, 릴케, 베케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 카프카, 헤르만 헤세 등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릴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중 일부를 소개하는 대목을 옮겨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끔 벽에 붙은 서가에서

 

나의 쇼펜하우어를 꺼내본다

 

그는 이 세상살이를 일컬어 

 

슬픔으로 가득 찬 감옥'이라 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 해도, 나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

 

감옥의 고독 속에서

 

그 옛날 달리보처럼 행복하게

 

나 나의 영혼의 현을 깨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