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읽기

사랑의 단상 2 - 롤랑 바르트

by 무하뉘 2023. 12. 31.
반응형

 

 

사랑의 단상을 이제 겨우 반쯤 읽었나 봅니다. 오늘은 좋았던 문장들을 기록에 남기며 소개해보려 합니다.

 

 

마음은 욕망의 기관이다. 마치 상상계의 영역 안에 사로잡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은 혹은 그 사람은 내 욕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걸까? 바로 거기에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마음의 모든 '문제점'이 집결되는 불안이 있다.

 

욕망의 기관으로서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르트는 육체적, 또는 감정적 영역 외에 마음으로부터도 욕망이 비롯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만, 우리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이성과 감성 외에 무엇인가 사람의 내면에 욕망이 일어나는 또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은, 혹은 영혼과도 같은 그 무엇이 존재할 것만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지요. 사랑에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신의 뇌과학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점점 더 사라져 가는 불확실한 내면의 세계에 대해 무작정 반겨 맞이할 수만은 없는 것은 또 왜일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아는 것조차 모르고 싶어 하는 회피성향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내가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며,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내 정신에 관심이 없으며, 당신은 내 마음에 관심이 없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하기만 한 사랑의 성질인 것 같습니다. 연결됨과 사랑의 충족, 욕망이 존재하는 방식은 늘 결핍을 향해 가는 것만 같습니다. 라캉의 욕망이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 책은 늘 욕망의 결핍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을 찾는 것은 왜일까 질문해 봅니다.

 

 

사실인즉 내가 실제로 충족될까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오직 파괴될 수 없는 충족에의 의지만이 찬연히 빛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이기적이고 나르시스트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상계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랑에 빠진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에의 의지, 삶의 의지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생의 단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지만, 사랑 안에 있는 나는 그것의 실존은 보지만 본질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후에야 그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사랑 안에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사랑 안에 있는 나는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삶 속에서 이런 모습은 한심한 인간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완강하게 선택한다네. 난 표류를 선택한다네. 그래서 계속한다네" - 베르테르

 

여기 용감한 베르테르는 한심함을 선택한 것일수도 있겠으나 그의 내면은 사랑과 고통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충만하고 진하게 느끼는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충족불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거부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그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살아있는 삶 아닐지, 우리는 정말 살아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는 나를 분류될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주체로 만들었다.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여기 이 독창적인 주체의 시작이 곧 사랑의 치명적인 약점이면서 위대함의 시작인것 같습니다. 글쓰기라고 표현된 것을 저는 삶의 자세, 혹 삶아감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나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완전성의 운명을 지녔을지라도, 나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하고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 살아있음이며 관계에 있어서도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의 정념은 정신 착란이다. 그러나 정신 착란은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 착란에 대해 말하며, 그리하여 이제 그것은 길들여졌다. 불가사의한 것은 오히려 "정신착란의 상실"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돌아갈 것인가?

 

정신착란적인 사랑의 정념은 길들여지고, 관리되어지고, 심지어는 수치화되고 계량화되어 거래되기까지 합니다. 정신착란의 상실입니다. 그런 상실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으나 살면서 한 번씩 자신을 돌아보며 던져야 할 질문인 것 같네요. 

 

사랑의 단상은 논리적인 흐름이 있는 책도 아니고, 서사를 따라가며 캐릭터와 스토리의 즐거움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며 깊게 파고들고자 한다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라캉의 정신분석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책이기도 하고, 현실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반을 읽어가며 인간이 가진 또 나 자신의 내면을 더 넓고 깊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