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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by 무하뉘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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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자는 죽음 반 사랑 반이다. 
나의 남자도 죽음 반 사랑 반이다.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

 

 

 

 

 

 

김수영의 산문집입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도 있고 좀 어려운 부분도 있고 합니다만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네요.

 

일부분 옮겨봅니다.

 

 

 

별별 여자가 지나다닌다

 

화려한 여자가 나는 좋구나

 

내일 아침에는 부부가 되자

 

집은 산 너머가 좋지 않으냐

 

오는 밤마다 두 사람 같이 귀족처럼

 

이 거리 걸을 것이다

 

오오 거리는 모든 나의 설움이다

 

 

 

얼마 전만 해도 나의 시에 연애시가 없다고 지적하는 친구의 말에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은, 시인으로서의 치욕감을 느끼고는 했지만 이제는 그런 콤플렉스나 초조감은 없다. 박용철의 "빛나는 자취" 같은 작품들이 보여 주는 힘의 세계가 이성의 사랑보다도 더 크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종교의 세계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자를 그냥 여자로서 대할 수가 없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죽음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고서는 온전한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눈으로 볼 때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나 남자에 대한 사랑이나 다를 게 없다. 너무 성인 같은 말을 써서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요즘 이러한 운산에 바쁘다. 이런 운산을 하고 있을  때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의 여자는 죽음 반 사랑 반이다. 나의 남자도 죽음 반 사랑 반이다.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 시에 다소나마 교양이 있는 사람이면 나의 이러한 연애관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키츠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실제의 체험에서 배운 것이니까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의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는 징조인지는 몰라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빈도가 잦아진다. 모든 것과 모든 일이 죽음의 척도에서 재어지게 된다. 자식을 볼 때에도 친구를 볼 때에도 아내를 볼 때에도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 화가로 치면 이제 나는 겨우 나체화를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잘하면 이제부터 정말 연애시다운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쓰게 되면 여편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연애시를, 여편네가 이혼을 하자고 대들 만한 연애시를, 그래도 뉘우치지 않을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  나의 연애시 중에서  (김수영, 1968)

 

 

글도 참 맛깔나게  쓰고 재미있게 읽었네요~

 

읽으면서 조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째서 죽음 반 사랑 반이며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고 하는걸까 하는 것이었지요.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들 또한 사랑과 죽음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구요.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검색하면 금방이네요

 

 

사랑과 죽음은 상통하는가? (naver.com)

 

사랑과 죽음은 상통하는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가장 오래된 사랑이야기인 만큼 수많은 시인과 작곡가들이 여기서 영감을 얻어 명작을 써냈다. 그 가운데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면모들을 아주 단순한 구성 속

terms.naver.com

 

 

프로이트의 설명뿐만이 아니라 조르주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의 역사"에서도 "관능의 욕망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싶은 욕망 또는 적어도 스스로를 남김없이 잃어버리고 싶은 욕망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김수영이 성적 에너지 분출로서의 에로스적 욕망의 죽음 측면에서 이야기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인간을 생명력/에너지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문제는 인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비딱한것이 성적자극과 긴장상태에서는 긴장을 해소하는, 죽음과도 같은 에너지의 분출을 추구하면서도,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에서는 자극과 긴장을 찾아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겠지요. 어쩌자는 건지...ㅎ

 

 

 

사랑과 죽음과 예술에 대한 책으로서는 철학자 김동규님의 "멜랑콜리 미학"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만, 저는 완독을 못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ㅎ

 

최고난이도의 책도 아니고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테마로 이야기를 엮어서 재미있게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플라톤, 칸트 기타등등의 철학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멜랑콜리아 I > 알브레히트 뒤러, 1514

 

 

 

 

뒤러의 유명한 동판화라고 하네요.

 

확대해서 보면 시선이 전혀 우울해보이지 않는데요

 

세상의 질서와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와 지식인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재적인 능력과 각고의 노력끝에도 진리를 알아낼 수 없기에 우울한 모습이라는....

 

다소 꾸며낸듯한(?) 느낌의 설명이 네이버에 있군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 생겨난 슬픔과 우울이 그를 대체하려는 창조물의 생산의 힘으로 사용되는 멜랑콜리의 설명들은 몇몇의 시론들에서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과 죽음의 주제는 예술과 심리, 철학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이야기거리가 되어 왔었던 것 같습니다만.....

 

현실을 산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와 되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해서 좀 착잡하기 합니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인생의 전부인것도 같아서 진지하게 그러나 조금 가볍게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드려요~

 

 

한줄평 : 자유롭고 거칠것없는 삶의 자세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평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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