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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 박연준,장석주

by 무하뉘 2023. 11. 24.

저는 제 자신을 840번 연주해본 적 있어요. - 박연준

 

 

 

두 작가의 글들을 앞뒤로 꺼꾸로 읽을 수 있도록 독특하게 편집했군요~ 박연준, 장석주 두 시인이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첫 편지는 에릭 사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박연준은 사티의 음악에게 편지를 보내고, 장석주는 사티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각각의 색깔이 묻어나지만 박연준 시인은 좀 더 문학적이고 장석주 작가는 좀 더 인간적인것 같네요~

박연준 시인의 편지에서 몇몇 구절들을 소개드려 봅니다.

 

 

<벡사시옹> (vexation:짜증)이란 곡을 작곡한 당신은 악보에 이런 주문을 달아놓지요.

- 연주자에게, 이 동기를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시오.

미리 준비를 하고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 저는 제 자신을 840번 연주해본 적 있어요. 반복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반복은 서성임입니다. 반복은 그네이고, 반복은 리듬이고, 반복은 걸음걸이지요. 반복은 지옥이고 반복은 강조입니다. 반복은 걱정이고 반복은 대체 불가능이고 반복은 반복 자체입니다. 반복은 변주를 향하고, 이 미세한 틀어짐이 균형과 색깔을 불러와요.

당신이 왜 840번을 반복해 연주하라 요청했는지 저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모두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음악은 "흐를 때도 있지만 고여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싸우고 있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서성일 때도 있죠. 저는 음악이 서성일 때, 그때가 좋습니다.

 

장석주 작가의 글입니다.

 

나는 아주 가끔씩만 당신의 음악을 듣습니다.

내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주차 안내원이나 방향제 영업사원이 되지 않고, 동사와 명사를 주로 쓰되 부사와 형용사에는 인색한 시를 썼다면, 당신은 해운 중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도보 여행자나 극지 탐험가는 되지 않은 채 생에 대부분을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며 살았지요. 당신이 기숙학교의 외로운 소년이었다면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외톨이였습니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온전한 사람들이었지요. 고독이라는 궁극의 진리 속에서 기쁨은 충분했습니다.

 

박연준 시인은 자신이 사티의 음악을 들으며 원룸에서 끝도 없이 시를 써대던 때를 떠올리며 또 이런 표현들을 합니다.

 

매일 쓸데없이 열렬히 시를 쓰던 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좋아했습니다. 당신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어요. '힘없이 힘있는' 걸음, 목적 없이 나아가는 걸음. 반복되는 걸음.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음. 고양이처럼 무심히 돌고 도는 걸음 말이지요.

 

이들이 보낸 편지처럼 박연준 시인은 사티의 음악을 닮았고, 장석주 시인은 사티의 삶을 닮았나 봅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삶 속에서 고독의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이 각자의 삶 속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사티의 고독, 박연준의 고독, 장석주의 고독 색깔은 달라도 그 무거움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나 강한 느낌을 주는 글은 박연준의 한 문장. 저는 제 자신을 840번 연주해본 적 있습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연주해본 적 있었던가? 하는 질문을 남기는 문장이었습니다. 사티의 음악 한 곡 들으시면서 편안한 밤 되세요 참 벡사시옹은 편안한 밤을 위한 음악은 아닌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