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용
- 김언
나는 너를 고용했다. 당분간 나 대신 살아줄 것을 부탁하는 말투로 명령했다. 그는 이미 나를 살고 있다. 나를 대신하여 너를 버리고 그를 버리고 나를 살고 있는 그에 게 내가 전해줄 말은 딱히 없다. 이미 나를 대신한 나이므로. 나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만 남은 그에게 다시 부탁하는 말투로 명령했다. 나를 대신해서 나를 죽여달라고. 그는 마지못해 그 자신을 칼로 찔렀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해진 그 절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가 아니다. 나도 아니다. 너는 무슨 염치로 살아 있겠는가. 대신 살아줄 사람을 찾아야겠지. 부탁하고 또 부탁해야겠지. 죽고 싶다는 말로.
시의 내용
김언의 시를 읽어봅니다. 처음 보았을 때 '뭔가 다중인격인가?' 하는 생각부터 떠올랐습니다. 현대인의 삶의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의 화자는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자신의 삶을 대신 살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되지만 천천히 읽다 보면 결국 나를 버린 나, 너를 버린 너, 그를 버린 그, 나중에는 나를 죽여달라고 말하는 나와 그래서 그 자신을 칼로 찌른 그, 이 모두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나는 그 모든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니라고 합니다. 아니 그 어느 누구도 아니길 바랍니다. 결국 다시 대신 살아줄 사람을 찾으려 합니다.
실존주의
이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실존주의 철학을 떠올리게 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실존주의자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자기를 기만하려 애쓰지만 완벽히 자기기만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저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입니다. 삶의 허무함을 알고 있는 한 인간입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지를 찾으려 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화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염치없음을 토로하고 또다시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너는 무슨 염치로 살아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는 화자가 자신을 대신 살아준 사람에게 묻는 말이지만, 동시에 화자가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준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에게도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삶의 괴로움을 동감하며 다시 자신의 문제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 우리는 삶의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이나 타인 혹은 내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정체성으로부터의 심각한 단절과 소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와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 짧으면서도 좋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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