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을 다시 읽는다. 예전엔 어떻게 읽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언가 와닿는 것이 생길는지 잘 모르겠다.
"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
이슈메일이라고 불러주마,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첫 문장이 그다지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건 나의 부족함 때문인 건가? 일단 의심스럽다. 음 시작이구나.... 하는,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지휘자가 첫 번째 지휘봉을 들어 올리는 느낌 정도는 있으나,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서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
내게는 이 문장에 비한다면... 좀 약하게 느껴진다. 은밀한 생에서는 뭔가 첫번째 한 문장에 시작과 끝이 다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바다 : 삶의 변화와 죽음의 메타포
이슈메일은 일상의 고단함과 무의미함에 괴로워하며, 바다로 나가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때의 바다는 삶의 변화와 재탄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다를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영혼이 가랑비 내리는 축축한 11월처럼 변할 때,"
명확하지도 않은 문구인데.....누구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 알 것 같은 분위기.... 그 축축한 분위기...... 시작은 나쁘지 않다.
"........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내게는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
그래 바다, 생의 변화가 시작될때, 그리고 생의 한 단락이 끝날 때쯤 그런 순간들엔 바다가 함께 한다. 바다는 죽음이며 새로운 탄생이다. 바다가 그립다. 언제였는지 바다를 본지가...그러나 바다는 또한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위대하면서도 무자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슈메일의 선장 아합은 흰고래 모비딕에게 자신의 다리를 잃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바다를 헤매게 된다. 모비딕을 죽이려는 자신의 집착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과 선원들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아마도 멜빌은 바다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취약하고 무력한 지, 그리고 우주의 질서에 맞서려는 인간의 투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악의 본질과 인간의 삶에 대한 도전
"세상에서 노예가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나와보라."
그렇지. 노예가 아닌 자가 있기나 할까? 주인과 노예를 이야기하면서 노예에 길들여진 주인 또한 노예가 되는 상황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듣고 생각해보지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주체적인 노예정도는 가능하려나? 모비딕, 은근히 유머와 돌려 까기 혹은 대놓고 까기가 꽤나 자주 나올 듯....
"나는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간에 명예롭고 존경할 만한 노고와 시련과 고생은 딱 질색이다. 범선, 바크, 브리그,스투너 등을 관리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라고 했던 이슈메일이....
"여기 이 땅에서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가 실은 내 진짜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보는 방식이란 것이, 굴이 바닷물을 통해 태양을 바라보며 그 두터운 물을 가장 얇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육신이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면 누구든 내 육신을 가져가라. 이건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 낸터킷를 위해 만세 삼창! 부서진 배든, 으스러진 육신이든 올 테면 와라. 제우스라 할지라도 내 영혼은 부술 수 없으니."
라고 말하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진짜 선원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제법 호기롭게 모험과 도전의 다짐을 해본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는 좀 익살스러운 면이 있어보이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어쩌면 모비딕은 인간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과 도전을 제시하는 상징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한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지, 존재의 근원과 목적을 알 수 있는지 등의 문제일 것이다. 이슈메일은 이제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탐구와 도전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잠깐 다른 책소개를 해보자면, 아이코니스트라는 책이 있다. 자연스럽게 모비딕이 떠오른다. 모비딕은 크고 단순하고 대담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성공한 책이 아니길 기대하면서(?) 나머지 재항해를 계속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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