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첫 문장을 쓰지 못해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책을 못쓰던 남자가 있다.
그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의 첫 문장을 찾아보고 비교하고 고민해왔다.
도저히 첫 문장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두번째 문장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두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 될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두번째 문장도 비우기로 한다.
독자들은 예상할 수 있다.
첫 문장이 되어버릴 다음 문장들이 계속해서 비워질 것을.
그렇게해서 그는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해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가 된다.
어찌저찌 해서 두번째 책부터는 정상적인 책을 낼 수가 있게 되고 마침내 유명작가가 된다.
세월이 지나고 이제 늙어버린 그는 쓰던 글이 마지막 책의 마지막 단어들이 될 것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 문장을 눈 앞에 둔 그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는 미완된 작품 하나를 남긴다.
그 작품을 완전히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을 완전히 파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이다.
단편중에서도 유난히 짧다.
16편의 단편이 모아진 단편집으로 재치 넘치고 유머러스하며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가볍지만 현실에서의 개인이나 사회의 어떤 단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 높은 작가이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에서는 개인이 가진 인생의 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혹시 첫 문장을 못써서 계속해서 미루는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한줄평 : 상상력이 필요한데 시간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책
평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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